파키스탄 실크로드 여행기
장 상 용 회계사
파키스탄 여행에서 돌아 온지 한달이 넘었다. 여행기란 것이 자칫 자랑으로 흐르기 쉬워 글을 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파키스탄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어렵게 다녀온 파키스탄에 대한 견문록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파키스탄에 간다고 하자 만나는 사람마다 거기를 왜 가느냐며 무사히 다녀오기를 바란다가 인사였다. 나도 어찌어찌하여 가기는 가지만 영 내키지가 않았다. 아내는 죽어도 같이 죽자며 함께 가잔다. 지난해 아프카니스탄에서 발생한 인질사태의 악몽이 남아있어서 그럴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파키스탄이나 아프카니스탄이나 다 그렇고 그런 나라로만 느껴진다. 그래서 여행자 보험도 따로 들고 아내에게 만일의 경우 재산정리 등을 유언처럼 당부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2008년 8월 5일
중견화가이면서 “떠남”이란 여행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동업 화백을 따라 15일간 파키스탄과 중국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이화백은 전문 배낭족이다. 당초 티베트인들이 성산(聖山)으로 여긴다는 카일라스를 배낭가자고 모객을 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티베트사태가 발생하여 파키스탄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은 배낭으로 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단다. 마침 우리가 가려고 하는 코스를 패키지로 가는 팀을 만났다. 이 팀의 리더는 전문 산악인 출신이면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채경석씨다. 패키지와 배낭은 물과 기름이다. 그래서 여행 일정이 패키지와 배낭과 트레킹이 혼합이 되었다. 차량이동과 잠자는 곳은 패키지와 배낭이 따로 놀기로 하였다. 나는 캐리어에 배낭 슬리핑백 등산화 스틱 등 한 짐인데 다른 사람은 달랑 배낭하나다. 나는 패키지 출신인데 배낭하고 잘 어울릴지 걱정이 된다.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홍콩 방콕을 거쳐 오다보니 밤늦게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도시인 라호르에 도착하였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입구에 자루 같은 옷을 입고 검은 수염에 똑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한 가득 우리를 쳐다본다. 내가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나라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8월 6일
오늘 일정은 라호르 시내관광이다. 호텔을 나서는데 총을 든 사람이 소파에 앉아 있다. 시내 웬만한 건물에는 차량 출입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예외 없이 총을 든 보안요원이 있다. 치안이 불안한 모양이다. 그래도 도로는 넘쳐나는 사람들로 활기차 보인다.
먼저 들른 곳이 라호르 박물관이다. 여러 전시품 중에 부처 고행상이라는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다. 장삼을 걸치고 정좌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고등학교 미술책에 실려 있는 작품이란다. 얼마나 금식을 하였는지 뱃가죽이 등에 붙었고 눈도 쑥 들어가고 온몸에 뼈만 앙상한데 표정은 더 없이 평안하고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재료는 돌이라고 하는데 온몸의 핏줄까지 묘사된 정교한 작품이다. 2세기 경에 제작된 것이라고 하니 당시 간다라 미술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일행 10명 중 선생님이 4분인데 미술 선생님이 2명이나 있어 여행 중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은 라호르 Fort라는 곳을 구경하는데 무굴 제국시대 왕궁이었다고 한다. 몇 개 남은 건물은 관리가 되지 않아 쇠락해 있고 넓은 궁궐은 건물이나 방의 흔적을 보여주는 터만 남아 있다. 무심한 참새 떼만 이방 저 방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황성옛터에 하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만 보니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이곳에 구경 온 현지인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우리를 따라 다니고 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었거나 아니면 이곳 생활이 너무나 단조로워 재미난 일이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는 왕 궁터 등 유물을 보고 현지인들은 우리를 관광하는 희한한 모습이 계속되었다.
라호르의 또 하나 볼거리는 국기 하강식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선에 닫혀있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도로변에 높다란 스탠드가 마련되어 있다. 하기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스탠드에 사람이 가득 차고 양쪽 진영의 구호와 함성이 더욱 열기를 더해간다. 석양의 태양은 아직도 따가워 완전 찜통이다. 시간이 되자 닭 벼슬 같은 투구를 쓴 군인들이 머리까지 다리를 들어올리는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철문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상대방 군인을 향하여 주먹을 불끈 쥔 양손을 거만하게 치켜들고 “꺄~불고 있어!!!” 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부르르 떤다. 그러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하기식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양국 군인들이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쇼다. 닭싸움 같은 쇼라도 판문점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파키스탄, 파키스탄”하고 선창하면, 관중들은 “린다왓, 린다왓” 하고 복창하기에 나는 여행 중에 종종 이 구호를 써먹었더니 효과가 있었다. 린다왓은 “참 좋다”라는 말이란다.
8월 7일
오늘은 텍실라를 거쳐 라왈핀디까지 이동하는 일정이다.
라호르에서 텍실라까지는 600km라는데 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대우에서 건설하였다는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보수한 흔적도 보이지 않아 아주 잘 만든 것 같다. 운행하는 차량도 거의 없어 피폐한 이곳의 경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처음엔 평야지대이더니 북으로 갈수록 산악지형으로 변한다. 우리 일정은 라호르에서 계속 동북쪽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쿤자랍 패스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서 우루무치에서 Out하는데 이 길이 실크로드란다. 신라 때 혜초가 말 타고 갔던 그 길을 지금은 차가 다니고 있는 것이다. 당시엔 측량 기술도 없었을 터인데 지금도 그 길을 사용하고 있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텍실라는 간다라 미술의 중심 도시다. 그 옛날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떠났다가 히말라야 산맥에 막혀 이곳 간다라 지방에서 머물다가 회군을 하였단다. 자연 헬레니즘 문화가 이곳에 들어왔을 것이다. 간다라는 불교미술 그중 불상의 발원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탁실라 박물관에는 여러 형태의 불상이 전시되어 있다. 팔이 여러 개 달린 불상은 네팔에서 본 불상이다. 통통한 불상은 우리나라 불상이다. 여자 불상도 있다.
산위에 있는 줄리안 유적지는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당초 불상과 불탑이 가득한 2층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폐허로 변하였고 수많은 불상이 하나같이 머리부분은 다 훼손되었고 몸통만 남아있다. 문화유산이란 말이 부끄럽다. 메트로폴리탄 유적지는 터키의 에베소처럼 고대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후손들이 여기저기서 돌을 가져다가 반 듯 반듯하게 돌담을 쌓아놓고 여기가 집터고 여기가 불탑 자리라고 하고 있다. 그냥 가만 두기나 할 일이지.
텍실라를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서 탱크나 대포 등을 볼 수 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텍실라는 파키스탄의 중공업 특히 군수공업의 중심지라고 한다. 조상의 소중한 문화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껴 않고 탱크나 만들고 있다니 씁쓸하다. 북한에 핵 기술을 제공한 무슨 박사는 지금 감옥에 있단다.
저녁 무렵 라왈핀디에 도착했다. 라왈핀디는 구시가지이고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는 신시가지라고 한다. 어제 오늘 다녀보니 파키스탄 사람들 엄청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호기심도 많고 참 순둥이들이다. 영어도 우리보다 잘하고 간판도 영어로 되어있어 한국인 가이드가 없어도 불편함이 없다. 탈레반은 다 어디로 간 것이지?
오늘 저녁식사는 각자 해결이란다. 호텔에 도착하자 배낭본색이 나온다. 현지 가이드도 없이 무작정 호텔을 나가 시장바닥을 훑는다. 저녁 식사도 현지인들이 우굴 거리는 저자거리의 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뜻밖의 외국 손님들에 당황한 주인이 얼른 2층으로 안내한다. 식당 종업원들이 모두 모여들더니 질문공세를 편다. 골고루 하나씩 시켜먹는다. 배낭 족들은 현지 음식 적응력이 뛰어나다. 어제 점심에 들른 뷔페식당은 다이애나비도 다녀간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별 희한한 음식종류가 많았다. 배낭들은 이상하게 생긴 것들만 일부러 가져다가 오만상을 찌푸려 가면서도 잘도 먹는다. 나는 패키지 출신이나 이곳 날라가는 밥과 양고기가 입에 맞아 배낭과 다녀도 견딜만하다.
이곳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가게마다 자가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발전기는 하나 같이 메이딘 재팬이다. 시장바닥에 돈을 받고 전화기를 빌려주는 곳이 있어 돌아가면서 집에 전화를 하였다. 파키스탄 어디에 비가 많이 와 홍수가 졌다고 아내가 걱정이 태산이다.
8월 8일
오늘은 카라코럼 하이웨이를 타고 치라스까지 이동하는 일정이다.
팬케이크와 커피로 아침을 하고 6시 반에 치라스를 향하여 출발한다. 치라스까지는 400Km 인데 13시간이 걸린단다. 도로사정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파키스탄의 명물 카라코럼 하이웨이(KKH)를 타는 날이다. KKH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도로란다. 중앙선도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 온갖 탈것 종류가 넘쳐난다. 달리는 속도가 저마다 달라 계속하여 앞지르기를 한다. 그런데 별로 경적도 울리지 않고 신경질도 내지 않는다. 차량은 낡았어도 운전솜씨 하나는 인정해 주어야겠다.
9시 반 쯤 드디어 산악지형으로 들어선다. 인더스강을 따라 계속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은 점점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까마득히 높은 산위에도 집이 있다. 벌목꾼 집이란다. KKH 준공기념탑에서 잠시 쉬어간다. KKH는 라왈핀디에서 중국의 카쉬카르까지 1800Km인데 중국과 파키스탄이 합작으로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년 동안 건설하였다고 적혀있다.
파키스탄 사람들 유난히 중국을 좋아한다. 중국에서 KKH 확장공사를 해주기로 했다, 이 다리도 중국에서 건설해 준 것이다. 여기에 발전소도 건설해 주기로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중국에 호의적이다. 인도에 대한 반작용도 한 몫 하겠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중국이 파키스탄, 특히 북부 지방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후 4시에 베샴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거대한 산중턱에 실처럼 길이 놓여 있다. 길은 간신히 두 대가 지나갈 수 있도록 포장이 되어 있다. 길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고 그 아래는 시멘트를 풀어놓은 것 같은 인더스 강이 흐른다. 50년 전에 만든 길이라서 도로는 산 모양을 그대로 따라간다. 계곡이 있으면 한번씩 다 들렸다 나와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낭떠러지 길이 계속된다.
도로도 축대를 쌓아서 간신히 만들었는데 도로 옆에 손톱만한 농토도 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다. 돌아설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도로 저 아래 아득한 낭떠러지 위에도 집이 있다. 쇠줄이라도 매여 있어야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경사다. 저녁 늦게 집에 내려가는 그 집 가장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민다. 아, 삶이란 얼마나 팍팍한 일인가.
내내 오금을 저리다가 깜박 잠이 들고 깨어보니 사위가 깜깜하다. 뵈는 게 없으니 낭떠러지 걱정도 사라진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치라스에 도착하였다. 도대체 몇 시간이 걸린 거야?
8월 9일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여니 바로 앞에 인더스 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강 건너 산에는 나무하나 풀하나 없다. 그야말로 벌거벗은 나체의 산이다. 바라보는 내가 민망하다. 강가는 시원하기 마련인데 더운 바람이 분다. 말로만 듣던 열풍이다. 마실 물이 바로 옆에 있건만 끝없는 열풍에 산이 타버린 것이다.
오늘은 산에서 1박을 하는 일정이라 배낭만 준비하라고 한다. 실크로드에서 잠시 벗어나 낭가파르밧을 트레킹 하는 날이다. 호텔에서 2시간가량 가자 라이코트 다리 앞에 도착한다. 여기서 짚차로 갈아타고 1시간 반을 더 가면 산행 기점이 나온단다. 나는 안사장과 울산에서 생물을 가르치시는 고선생, 최여사 넷이서 한 팀이 되어 맨 마지막 차에 승차하였다. 차는 이내 갈지자로 산을 기어오른다. 짚차 뒤에는 조수 2명이 타서 차가 멈출 때마다 돌을 주어다 바퀴에 고이고 엔진오일을 보충해준다. 차에는 아무런 계기판도 없는 것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
산을 넘어가자 도로는 깊은 협곡의 산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자갈길 도로는 겨우 짚차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도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가드레일도 없다. 계곡에는 회색빛 급류가 흐르고 있다.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뼈는 고사하고 물이나 한바가지 떠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갈지자 커브에서는 한번에 돌지 못하고 반드시 후진을 한번씩 한다. 그때마다 등짝이 서늘하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실낱같은 도로에 다들 기가 질린다. 어제의 KKH는 애들 장난이다.
사진을 찍으라고 잠시 쉬어준다. 서 있을 곳도 없는데 어데서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 지나온 도로가 아득하게 산위에 걸려있다. 가만 보니 도로가 전부 돌로 축대를 쌓아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시멘트 등으로 기초 공사도 하지 않고 고만 고만한 돌로 축대를 쌓은 것이다. 산은 푸석푸석한 흙으로 된 돌산인데 너무나 허술해 보인다. 산위에서 바위라도 하나 구르거나 아니면 짚차의 무게에 금방이라도 도로가 계곡 아래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저 아래를 내려보니 실제로 무너져 폐기된 도로가 여기저기 보인다.
여행사 일정표에는 “천길 낭떠러지를 가르며 달리는 짚차는 스릴만점인 여행”이라고 되어있는데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것은 스릴이라고 할 수 없고 순전히 요행수를 바라는 무모한 여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도로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자 불안한 마음이 점점 더해간다. 생전 안하던 보험을 들고 온 일, 유언을 하고 온 일이 더욱 마음에 걸린다. 나 때문에 일이 터진다면 같이 탄 다른 일행은 또 어쩌란 말인가. 짚차는 닭장처럼 용접을 해 놓아서 튕겨져 나갈 수도 없다. 온갖 상상이 다 든다. 운전사에게 계속 슬로우 슬로우 하건만 이 친구는 노 프러블럼 만 외친다. 너는 죽으면 인샬라인지 모르지만 나는 개죽음이다 이놈아, 천천히 좀 가자....
1시간 반 만에 타토에 도착하니 다리에 맥이 탁 풀린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주는데 밥 생각이 전혀 없다. 내일 다시 이 길을 내려가야 한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한데 차라리 지금부터 걸어서 내려가고 싶다. 오후 일정은 트레킹으로 산장(해발3300m)까지 올라 가는데 5시간이 걸린단다. 다리에 힘도 풀려서 나는 이화백을 꼬드겨 안사장과 셋이서 말을 타고 올라갔다. 5시 산장에 도착하자 이내 비바람이 불고 추워진다. 말을 타고 오길 잘했다.
8월 10일
안사장이 갑자기 닥친 추위에 배탈이 나서 밤새 고생을 하였다. 그때마다 통나무 롯지 밖을 살펴보아도 별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나마 비바람은 그치고 포근하다. 이곳은 훼리메도우라는 곳이다. 요정들의 초원이란 뜻이다.
통나무 롯지 앞에 푸른 초원이 있고 거기에 노란색 돔 텐트가 있다. 저 아래 계곡으로는 빙하가 보인다. 그 옆으로는 전나무 숲이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설산이 낭가파르밧이다. 완벽한 그림엽서다. 파키스탄에 8,000미터급 산이 두개 있는데 K2와 낭가파르밧이다. 낭가파르밧은 비운의 산이라고 한다. 산은 피를 먹고 유명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낭가파르밧이 특히 더 그렇단다. 2차대전 무렵 프랑스와 독일 간에 치열한 고산 등정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티벳트에서 7년이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산이란다.
이곳은 삽상한 공기를 마시며 초원에 누워 낭가파르밧을 감상하거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래킹을 하는 곳이란다. 유감스럽게도 날씨가 흐려 설산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고산증세인지 머리도 아프고 한발 한발 떼기가 불편하다. 롯지 앞 초원에 슬리핑백을 베개 삼아 누어있다 보니 깜박 잠이 들었다.
군대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내려오면서 보니 산 곳곳이 산사태와 빗물에 골이 깊게 파여 있다. 산이 푸석푸석한 토사로 되어있어 비가 조금만 와도 스며들지 못하고 산을 후벼 파고 있다. 훼리메도우도 빗물에 씻겨 한쪽 면이 절벽인데 몇 년 후에는 이마저도 없어질 것 같다.
어제의 그 팀원이 타토에서 다시 짚차를 탄다. 어제는 맨 후미였는데 오늘은 선두 차량이다. 이번 운전사는 자꾸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어 침을 뱉거나 뒤를 돌아본다. 뒤차는 내가 알려 줄 터이니 전방을 주시하라고 해도 이 친구도 노 프로블럼이란다. 도중에 뱀이 한 마리 지나가자 대뜸 차를 멈추더니 잔인하게 돌로 짓이겨 죽인다. 이것이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다들 질려서 말도 못한다. 드디어 차가 고갯마루를 돌자 저 아래 라이코트 다리가 보인다. 그제서야 일행들의 말문이 트인다.
이제 길기트를 거쳐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알려진 훈자마을까지 가는 일정이다. 9시간쯤 걸려 한밤중에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평지를 가는데 그까짓 9시간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다시 나무하나 풀하나 없는 황량한 산들이 이어진다. 파키스탄은 온 국토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산에서 밀려 내려온 토사가 산 밑에 삼각주를 이루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그 삼각주마저 강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밤 12시 반에 훈자 마을에 도착하였다. 예약된 숙소는 한국인 복만씨가 운영한다는 게스트 하우스다. 게스트하우스의 계단이 가파르고 여기서 3일을 머문다고 하여 나는 안사장과 가이드가 권하는 호텔로 옮겼다.
8월 11일
오늘 하루는 자유일정이다. 배낭들은 환호성을 지르는데 나는 오늘 하루를 어찌 보낼지 걱정이다.
호텔주변을 산책하는데 어느 집안에 노란 열매가 잔뜩 달린 나무가 있다. 염소를 매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거 살구냐고 묻자 대뜸 살구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를 꺾어준다. 아무래도 돈을 좀 주어야 할 것 같아 그 집안으로 들어가니 자꾸 가지를 꺾어온다. 노랗게 익은 것이 맛이 기막히다. 아침 식사를 살구로 하였다.
장수비결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본다. 훈자마을은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표고차가 100미터도 넘어 보이는 산비탈에 형성되어 있다. 주위에는 7,000m급 설산 고봉들이 둘러쌓고 있다. 달동네도 이런 달동네가 없다. 주민들이 사는 집들을 가보니 골목골목이 미로 같다. 집집마다 짐승을 기르는데 집은 짐승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겨울에는 눈이 쌓이고 추운데 난방시설도 없단다. 산을 보니 땔감이 나올 곳이 없겠다.
식수로 사용하는 물도 시커먼 물이다. 어제 밤 샤워를 하는데 시커먼 물이 나와서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얼마나 손님이 없었으면 물이 시커멓게 되었는가 하고 말이다. 아침에 호텔 매니저한테 따졌더니 그게 빙하물이란다. 자기들은 그걸 마신단다.
할아버지와 손자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집 앞 낭떠러지 담벼락에 걸터앉아 있기에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곳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고 하였더니 kind 하지 않고 프렌들리하다고 정정해 준다.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농사일을 보러 가는 노인에게 말을 걸어도 짜증내지 않고 끝까지 답변을 해준다. 장수의 비결은 좋은 환경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저녁은 호텔에서 먹기로 하였다. 아침에 매니저한테 슬쩍 술이 있냐고 하니 훈자워터는 구할 수 있단다. 아니 워터 말고 리커 말이야! 말을 하다보니 같은 것을 서로 달리 표현하고 있었다.
훈자워터는 이곳 주민이 만드는 술인데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만 허용된다고 한다. 자연 가격도 비싸다. 지저분한 페트병에 담겨있어 꺼림직 했으나 제조방법을 물으니 증류방식인 것 같아 먹기로 하였다. 파키스탄에 와서 처음 먹는 술이다. 커다란 식당에 손님이라고는 안사장과 나 둘뿐이라 식당 직원들의 풀 서비스를 받는다. 한 친구는 왔다 갔다 하더니 아예 옆자리에 앉아 훈자워터를 잘도 받아 마신다. 35살이라는데 미혼이란다. 이마가 번들번들하고 힘도 좋아 보여 모닝텐트를 어찌 해결 하냐고 하니 금방 알아듣는다. 여지친구와 이슬라마바드까지 간단다. 아니, 거기가 어딘데 거기까지 가. 산에 나무가 없다 보니 별 부작용이 다나온다.
8월 12일
오늘 울타르 빙하 트레킹을 가는 날이나 물이 불어 갈수가 없고 대신에 빙하트레킹을 하기로 하였다.
짚차로 갈아타고 훈자마을에서 얼마를 가자 도로로 물이 쏟아져 내린다.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냉기가 몰려온다. 빙하물이란다. 의복이 허술한 안사장이 짚차의 담요를 뒤집어쓰니 수염도 텁수룩한 것이 영락없이 한 푼 줍쇼다.
다시 짚차를 산위로 몰아 소금 호수까지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도보란다. 길옆에 수로가 만들어 져 있는데 물이 없다. 돌로 축대를 쌓아 수로를 만들었으니 다 새어 나갔을 것 같다. 시멘트 관만 있으면 물을 받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텐데.
바닥의 풀들은 전부 허브다. 널찍한 돌들이 바닥에 좍 깔렸다. 상남에서 집을 짓고 있는 안사장은 구들장 깜이라고 연신 입맛을 다신다. 한참을 오르자 빙하가 나타난다. 빙하 옆으로 빙하가 내려오면서 밀려난 독 자갈 모래로 커다란 제방을 이루고 있다.
다시 더 올라가 빙하를 만져 보기로 하였다. 경사가 심하다. 이제는 다 왔겠지 하면 또 제방이 이어진다. 드디어 제방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빙하는 저만치 있어 만질 수가 없다. 상류로 오면 수정처럼 맑은 빙하를 기대하였으나 여기도 독 자갈이 섞인 거무튀튀한 빙하다. 가만히 들으니 빙하 속에 바위가 구르는 소리가 난다. 빠른 속도로 빙하가 녹고 있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인디애나존스에 나왔다는 출렁 다리도 구경하고 살구 밭에도 들렀다. 출렁다리는 망가진 다리 옆에 새로 만들었는데 종전 다리보다 영 허술해 보인다. 쇠줄도 가늘고 무엇보다 바닥에 판자와 통나무가 뜨문뜨문 하나씩 놓여있다. 한 현지 노인은 봇짐을 등에 매 더니 양손에 쇠줄을 잡고 사뿐 사뿐 건너간다. 나도 따라서 건너가다가 시커먼 강물 속에 화난 아내의 얼굴이 보여 되돌아왔다.
8월 13일
훈자마을은 배낭들의 블랙홀이란다. 훈자 마을에 들어오면 그 매력에 빠져 장기 체류한다는 말이다. 숙박비 1달러에 머물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도 여럿 보였다. 그러나 내가 본 훈자마을은 여기저기 숙박시설을 짓고 있고 가파른 비탈길을 낡은 짚차가 오르내리며 매연을 뿜어대는 곳으로 블랙홀도 아니고 더 이상 장수마을은 아니었다.
이제 훈자마을을 떠나 중국의 타쉬카르칸까지 가야한다. 여행 중 대통령 탄핵소식도 들리고 불안하였는데 이제 파키스탄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지금 올림픽 기간이라 검문이 심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벽같이 출발하였다.
11시쯤 수수트에서 세관신고를 하고 국경을 통과하는 버스로 갈아타고 가이드와 헤어진다. 라왈핀디에서 산다는 가이드는 중 고등학생 아이가 셋인데 관광객이 없어 영 수입이 없단다. 파키스탄의 정치가 불안해지고 나서 관광객이 5%로 줄어들었단다. 남은 파키스탄 돈을 다 손에 쥐어주었다.
여기서부터 군자랍 국립공원이라는 팻말이 보여 뭐 볼 것이 있나 하여 맨 앞자리 가이드 자리에 앉았으나 벌거숭이 그 산이 그 산이다. 드디어 군자랍패스(4733m)에 도착하였다. 돌 비석이 하나 있는데 앞쪽은 파키스탄, 뒤쪽은 중국으로 표시되어 있다. 버스를 타고 와서 그런지 고산증세는 없다. 한 떼의 파키스탄 청년들이 몰려들어 한국에 대하여 아이들처럼 질문공세를 편다. 자기 형이 한국에 있다는데 호감을 갖는걸 보니 그 사장, 월급은 제대로 주었다보다. 내가 고마운 생각이 든다. 차는 떠나려는데 놓아주질 않으니 참 순수한 사람들이다.
파키스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자 자연환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저쪽은 나무하나 풀하나 없는 급경사의 돌산인데 중국은 완만한 구릉으로 풀이 자라고 있다. 산에는 흙도 있다. 지구 판막설에 따르면 파키스탄 판막이 중국 쪽 판막을 밑에서 밀어 올렸다고 한다.
길바닥에다 짐을 다 풀어헤치고 중국 군인의 검문을 받고 또 도시에 들어갈 때마다 검문을 받다보니 저녁 무렵에야 타쉬카르칸에 도착하였다. 땅은 중국 땅인데 사람들은 전부 위그르 족들로 무슬림이라고 한다. 얼마 전 폭탄 테러가 난 곳이라고 한다.
8월 14일 - 18일
파키스탄 여행기이므로 나머지 중국에서의 일정은 압축을 해야겠다. 실제 중국에서는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다.
타쉬카르칸에서 카쉬카르까지 하루일정이다. 카쉬에서 하루 쉬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쿠차로, 쿠차에서 다시 밤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로 가서 귀국하였다.
타쉬카르칸부터는 성실한 조선족 가이드가 동행을 하여 쉴 새 없이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말이라 편하긴 한데 귀 신경이 열리면 시 신경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타쉬에서 카쉬로 가는 길에 이곳 사람들이 신성시 한다는 카라쿨 호수가 있어 점심도 먹고 쉬어갔다.
꽤 커다란 호수 주변에 7,000미터급 설산이 있고 설산의 하얀 봉우리가 그대로 호수에 반사되어 한 폭의 이발관 그림이었다. 수지맞은 사람은 강 사장이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사업을 하다 지금은 치악산 자락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강 사장은 배낭하나가 전부 사진장비다.
카쉬카르에는 알제리의 퍼스를 연상하는 올드시티와 건륭황제의 비였다는 향비묘가 있는데 무엇보다 배낭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선데이 바자르다. 바자르는 재래시장을 말한다. 가는 날이 마침 금요일 오후 무슬림 기도시간이라고 시장안 사람들을 다 철수 시키고 있었다. 얼마 전 폭탄 사건이 있어 긴장감이 돌았다. 한 시간을 어슬렁거리자 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그곳 사람들 물건 흥정이 참 재미있었다. 터무니없이 값을 낮춰 불러도 화를 내지 않고 자기 오퍼 가격에서 조금씩 가격을 내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가 양보해 준다는 식이다.
카쉬에서 쿠차, 쿠차에서 우루무치까지는 평편한 타클라마칸 사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철로 주변에는 호스로 물을 끌어와 나무를 심고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여러 장치를 해 놓았다. 중국 정부가 이 사막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거대한 사막이 풀밭이 되면 중국 지형이 바뀔 것 같다.
쿠차에서 볼거리는 키질 석굴이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있고 그 앞산 중턱에 여러 개의 구멍이 있다. 구멍마다 불탑과 벽화가 있었을 터인데 발굴한다는 핑계로 독일인이 모두 가져갔다고 하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키질석굴 앞 식당 마당에는 좌판을 하는 부부가 있었다. 청옥으로 된 작은 주전자 같은 것이 있는데 상당히 정교해 보인다. 물으니 100위안이란다. 집에 와서 칫솔로 시커먼 먼지 때를 베끼자 좌우 대칭으로 된 원 안에 용과 봉황 문양이 누렇게 나타난다. 나는 금이라고 하고 아내는 택도 아니라고 한다.
지금 파키스탄 여행을 회상해 보니 생각나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버스 안 모습이다. 기사 뒤에는 꽁지머리 이화백과 대학생이 있고 그 뒤에는 내가 있고 내 뒤에는 꼼꼼하게 배낭 살림살이를 해주신 고여사, 그 옆자리는 오지랖 넓으신 최여사, 그리고 그 뒤에는 안사장, 김선생, 전선생, 이선생이 있고 그리고 맨 뒤 짐짝 앞에는 언제나 강 사장이 있었다. 그는 끝까지 반바지 하나로 버텼다.
아, 우리 언제나 다시 만나 배낭한번 같이 매어 볼까나!
2008.9.22
장상용회계사(011-758-9285)
다녀온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10월입니다.
깔금하게 정리된 여행기를 읽으니 지난 여름의 실크로드 여행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키스탄은 폭탄테러, 탈레반, 분쟁지역 등의 정보로 인하여
가면 큰일날 것 처럼,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하늘에서 돌떨어져 맞을 확율의 위험성을 제외하면 아무 탈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 여행기가 파키스탄을 여행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가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