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미 여행기

[오기사의 여행스케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톡톡 털린 뒤에야 자리 뜨게 만드는
자기제어력 시험장    

벨라지오 호텔과 시저스 팰리스 호텔  


"신분증을 볼 수 있을까요?"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어려보인다고 좋아할 나이도 지났고, 그때마다 신분증을 꺼내 보이는 일은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어쩌리오. 슬프게도 서양 사람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는 재주가 전무한데.

"오 마이 갓, 서른!" 그럼 내가 스물한 살도 안돼 보였냐? 어쨌든 나는 카지노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화려한 자기 제어 능력의 시험장. 카지노에 들어서기 직전 속으로 한 번 더 다짐해야 했다. 예상했던 돈까지 잃은 뒤에는 미련 없이 일어설 것.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은 최고 성수기를 제외하면 다른 곳의 동급 호텔보다 숙박비가 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차액 정도의 돈을 카지노에서 잃어주는 것은 이 환락의 도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물론 잃지 않거나 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테고.

'일어나지 못하는 자는 앉을 자격도 없는 것이지.' 카지노 매니저가 들으면 섭섭해할 말을 되뇌며 블랙잭 테이블에 앉았다. 카드에 적힌 숫자의 합을 최대 21에 근접시키는 간단한 게임으로, 가령 22 같은 수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돈을 잃는다. 물론 내겐 22나 23 같은 결과가 너무 자주 나왔다. 시간도 별로 안 흘렀는데 나는 원래 설정했던 금액의 두 배만큼을 잃었고, 그러나 도무지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딜러가 내 벌게진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왠지 사악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내게서 얼마간의 돈을 더 빼앗아갔다. 더 앉아 있고 싶어도 지갑 속 현금이 떨어져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왔다. 허탈함에 어깨를 늘어뜨린 채 그 사악해 뵈는 딜러에게 '고마웠어(요)'라고 인사한 뒤 그 사바세계를 빠져나왔다.

'돈이 없는 자도 앉을 자격이 없는 것이지.'

가짜처럼 보이는 가짜들로 그득한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그렇게 꿈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키치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뉴욕뉴욕 호텔의 가짜 뉴욕 거리에 가서 베이글이나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 글은 글쓴이 오영욱님의 동의를 받아 운영자가 올리는 글입니다.
* 자료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10&Total_ID=263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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